굴드베르크 변주곡 음악 이야기



0.
이런 미사여구를 싫어하긴 합니다만,
만약 제가 음반 한 장만 들을 수 있다면 이 음반을 고를 겁니다. 정말로요.


1.
1740년 경에 라이프치히의 카이제를링크 백작은 바흐한테 작곡을 의뢰합니다. 당시 그는 불면증을 앓고 있었는데, 자신의 전속 하프시코드 연주자였던 요한 고트리브 골드베르크가 연주할 수 있는, 잔잔하면서 유희적인 성격으로 잠이 잘 올 수 있는 곡을 써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바흐는 변주곡 형식의 곡을 구상하게 됩니다.
사실 바흐는 변주곡이라는 형식을 그리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대위법에 있어서 정점의 위치에 있었던 그이니만큼, 일정하고 단순한 화성 구조가 반복되는 변주곡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곡을 제외하고는 바흐의 '변주곡'은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이 곡을 들어보면 흔히 생각하는 변주곡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변주가 이루어져 있습니다. 많이 알려진 모짜르트의 '반짝반짝 작은별 변주곡' 처럼 주 멜로디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알려진 이 곡의 원래 제목은 '다양한 변주의 아리아'입니다. 처음에 곡 전체의 중심축 역할을 아리아가 나오고, 아리아의 베이스 주제를 바탕으로 다른 여러 곡을 확장해 나갑니다. 쉽게 말해서 통기타 코드만 주고 그 코드에 맞게 적당한 멜로디를 만들어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서른 개의 변주가 끝난 후 맨 마지막에 다시 처음의 아리아가 나오면서 끝을 맺습니다.



이 곡은 굉장히 치밀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한 변주가 32마디로 이루어져 있는데, 30개의 변주과 앞뒤 아리아를 합치면 32곡이 됩니다. 또한 3개의 변주마다 하나의 캐논이 들어가 있고 캐논이 반복될 때마다 한 음정씩 증가합니다.
(캐논은 쉽게 말해서 돌림노래입니다. 또한 음정은 처음 멜로디와 뒤의 멜로디의 음 차이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학교종으로 돌림노래를 한다고 할 때, 솔-솔-라-라-솔-솔-미 로 부르고 나서 뒤따라오는 멜로디는 미-미-파#-파#-미-미-도# 로 부르는 식입니다.)
그 외에도 많은 요소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 글에 다 쓰지는 못했지만, 관심있으신 분들은 괴델-에셔-바흐를 읽어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복잡한 요소를 무시한다고 할 지라도, 이 곡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바흐의 적절하고 절묘한 곡 배치로 인해, 음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출렁입니다. 특히 수많은 변주를 거쳐간 후 다시 반복되는 아리아를 듣고 있으면 가끔씩 가슴이 짠해지기도 합니다. 논리적 구조와 서정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곡 중 하나입니다.


2.
글렌 굴드는 흔히 기인 피아니스트라고 불리곤 합니다. 한여름에도 파카에 장갑에 목도리를 매고 다녔고, 녹음하기 전에는 물 속에 한참동안 손을 담그고 나서 시작했고, 대중들 앞에 절대로 나서지 않은채 음반 녹음에만 몰두하고, 항상 엄청 자신만의 (엄청 낮은) 의자에 앉아서 삐걱거리며 연주했고, 연주할 때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로 유명했고(그의 모든 음반에는 콧노래가 녹음되어 있습니다) 등등 ...... 그에 대해서는 너무 많은 얘기거리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그가 단순히 기인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기이함을 따지자면 그보다 심한 피아니스트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바흐 연주에 있습니다. 바흐 연주가 그렇게 주류가 아니었던 시절, 그는 거의 모든 종류의 바흐 건반음악을 녹음했고, 좋든 싫든 이후의 바흐 연주자는(특히 피아노) 굴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굴드의 연주는 굉장히 독특합니다. 음의 터치나 리듬, 강약이 다른 연주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특히 베토벤이나 모차르트를 연주한 것을 들어보면 가히 '컬트' 수준에 가깝습니다. 굴드가 왼손잡이었기 때문에 왼손에 상대적으로 힘을 많이 실었다는 설도 있지만, 이러한 연주 특성은 바흐의 작품에 잘 맞아떨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른 작곡가들의 곡처럼 '오른손 멜로디, 왼손 반주'라는 틀에서 바흐는 어느 정도 자유롭기 때문입니다.




3.
이 음반은 그가 공식적으로 녹음한 최초의 음반입니다. 1955년에 녹음한 이 음반을 통해 굴드와 골드베르크 변주곡 둘 다 대중들에게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물론 그 전에도 골드베르크를 연주한 음반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30년대 이후 란도브스카, 아라우 등의 연주자가 이미 녹음을 했었으나, 이 연주만큼 주목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출반된 지 5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제목에 썼듯이, 굴드의 연주를 특별히 굴드베르크 변주곡(Gouldberg Variation)이라고 부를 정도입니다.

이 연주의 최대 매력은 속도감에 있습니다. 변주마다 붙어있는 반복을 전부 생략한데다, 굉장한 속도로 곡을 돌파하기 때문에 보통 한 시간 정도 걸리는 이 곡을 40분도 채 되지 않는 길이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개성적인 리듬, 강약도 이 음반에 빠져들게 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또 이 음반을 녹음할 때에 소니의 엔지니어들이 굴드의 허밍을 최대한 들리지 않도록 작업했지만, 그렇다고 완벽하게 없어진 것이 아니라서 연주 군데군데에 억눌린 듯한 허밍이 살짝 들리는데, 이런 소소한 요소들이 모여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저는 이 음반을 처음 듣고 마치 락 앨범을 듣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그 정도로 과격하고 굉장한 광기가 살아있는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연주는 처음에 평론가들의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았는데, 이는 전통적인 바흐의 연주 해석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녹음한 81년 버전의 두 번째 골드베르크 녹음에서는 광기가 많이 없어진 대신 한층 바흐답고 깊은 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리아


제 14변주


제 25변주


제 30변주


아리아 다카포(다시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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