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지완과 파시즘 많은 이야기

나지완-프록터 빈볼 사건에서 가장 경악스러웠던 사실은 다음날 나지완이 기자들을 대동하고 프록터에게 찾아가 '나한테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느냐'고 물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거의 모든 기자들이 침묵하고 있는데(하긴 자기들도 좋다고 따라갔을테니 함부로 말할 리가 있나) 누군가에게 공개적으로 racist냐고 묻는 것 자체가 racism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인종 문제가 잘 와닿지 않을 테니 바꿔보면, 누군가에게 '너 빨갱이지'라고 묻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을 모욕하는 행위이다. 일전에 진중권이 이상규를 향해 '공인이라면 자기 사상을 밝혀야 한다'고 일갈했으면서, 전원책의 '김정일 개새끼' 발언에는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인 적이 있었다. 얼핏보면 이중적인 태도라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엄밀히 둘은 다른 것이다. 전자는 사상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라면, 후자는 그 너머에 다른 목적을 품고 있다.

내가 나지완의 모든 해명들을 거짓말 혹은 언론플레이로 파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지 자신에게 인종차별적 발언을 한 것이 화나고 억울하다면 왜 개인적으로 찾아가 물어보지 않았을까? 그렇게 인종차별에 민감한 사람이 왜 프록터에게는 '당신을 인종차별주의자로 여긴 것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지 않았을까? 기자들은 왜 같이 간 걸까? 그의 행위를 과연 순수한 의도에서 이해할 수 있을까?

비단 프록터가 아니라 김현수에 대한 해명도 자세히 살펴보면 괴상하다. '후배가 선배의 욕을 받아쳐서 화가 났다' 나지완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사회에서 김현수처럼 행동하면 매장당한다'고 비난하지만, 글쎄, 선배가 우리들에게 부당한 이유로 욕을 한다면 웃으며 넘어갈 것인가? 그런 류의 인간은 사회에서 매장당하지는 않을지언정, 사회의 자양분 역할밖에는 되지 못한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의 나무 같은 삶을 살고 싶은가?

이렇듯 나지완을 무비판적으로 옹호하고 프록터/김현수/고창성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1. 비정상적인 인종차별주의
  2. 왜곡된 형태의 권위주의
  3. 특정 세력에 대한 숭배 혹은 극단적 불관용(범죄두 등의 비아냥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라는 세 가지 사상을 은연중에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알다시피, 위 세 항목은 파시즘을 구성하는 중심적인 사상이다.

이 사건에서 빈볼 시비 자체의 잘잘못이나 특정 구단의 '언론플레이'를 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몇다리 건너면 서로 다 아는 사이다. 어떤 구단이 여론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면 그건 오히려 칭찬해야 마땅한 프런트다. 위의 경향이 특정 팬덤에게만 쏠려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심지어 두산이 저 상황이었더라도 두산팬들은 똑같이 행동했으리라 확신한다. 다만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런 극단적인 논리는 말그대로 '팬덤'이라는 집단 속에서 숙성되어서 나오는 것이다. 개인은 이성적이라도, 개인이 모인 집단은 이성적이라는 보장이 없다.

덧글

  • 零丁洋 2012/07/07 15:14 # 답글

    스포츠는 우리 안의 파시즘을 배설하는 출구가 아닐까요. 우리는 악을 들어내지 못하게 억압할 뿐이지 출구를 만들어 배설시키지 않는 것 같아요. 배설되지 못한 악은 결국 자신을 악으로 만들죠. 스포츠나 축재나 스타는 악의 배설구로 유용하지 않을까요. 스타는 욕을 먹지만 대신 돈을 벌죠.
  • Tbear 2012/07/07 08:44 # 삭제 답글

    그렇다면 만약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직접 들었을 때 직접적으로 racist냐고 따지지 못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나지완 선수의 경우야 오해에서 비롯된 경우이긴 하지만, 한국이나 미국에서 백인에게 yellow pig란 소리를 듣고도 항의한번 못한다는 건가요?? 파시즘의 판별기준이 너무 민감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 댓글남깁니다

  • ㅋㅋㅋㅋㅋ 2012/07/07 08:49 # 삭제

    이글 어디에 항의하지 말라는 내용이 있나요. 항의하는 방식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거지.

    글을 좀 제대로 읽고 리플을 답시다.
  • 요놈잡았다 2012/07/07 10:12 # 삭제

    홍어홍어해줄게
  • ㅇㅇ 2012/07/07 15:26 # 삭제

    애초에 옐로우 피그란 말을 안했다잖아요 지가 잘못들어 놓고..
  • dd 2012/07/07 15:58 # 삭제

    요놈잡았다> 네이버도 모자라냐? 하여간 한심하다.
  • 긁적 2012/07/07 12:05 # 답글

    근데 개인도 그다지 이성적이지 않은 것 같아요-_-..('이성'이라는 말이 애매하긴 하지만)
    개인은 이성적이지 않고, 집단은 비이성적 측면을 부추긴다고 보면 어떨까요?
  • SKY樂 2012/07/07 12:08 # 답글

    저도 비슷한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 주인장께 2012/07/07 16:00 # 삭제 답글

    그런데 그건 아십니까? 미국에서도 황인종에게 특히 눈에 보이게 차별이 들어오면 하는 말이 "Is it because I am different?"입니다. 미국백인들이 무서워 하는 말중 하나죠. 방어도구중 하나이고 흔히 쓰는 말예요. 별로 특별한 말을 나지완선수가 한건 아닙니다.
  • Clockoon 2012/07/07 16:30 #

    님께서, 예를 들어 센트럴 파크에서 아침 라이브 방송하고 있는 촬영장 들어가서 공개적으로 물어볼 수 있다면 맞는 말씀이라고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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