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원조? 음악 이야기

오늘도 보아를 핥아보자 (일본편)

지금 일본에서 한류다 뭐다 하면서 활동하고 있는 가수, 아이돌 등등은 사실 보아에게 전부 넙죽 엎드려야 합니다. 아니. 진짜로. 배우들은 배용준에게 해주세요. 가수는 진짜 보아가 아니었으면 동방신기고 소녀시대고 투피엠이고 니들이 일본에서 먹혔을 거 같냐. 대선배 보아에게 무릎 꿇어라. 보아느님 핡핡핡. 암튼 왜냐면, 일찌기 보아는 일본으로 건너가서, 뭐랄까, 한국에서 온 최고의 가수! 라는 입지가 아니라 진짜 일본 방송의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단계를 밟아 일본 전역에 그 이름을 떨치면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니까 예를 들어 소녀시대처럼 우리나라에서 이미 정점을 찍은 후에 그 인기를 기반으로 일본으로 간 게 아니라, 한국에서도 좀 애매...한 위치였을 때 일본에 가서 한국과 마찬가지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는 거죠. 이거 중요합니다. 그 노력의 정도가 진짜 상대가 안 되는 거거든요.

- TEAM


한류의 원조라..

이 분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지요.

(전략)

음악적 성향이 일부 연령층에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한국 대중음악계에 다소 경박하다거나 저질스럽다는 부정적 이미지때문에 도외시되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뽕짝 디스코 메들리 가수 이박사가 일본에 진출하게 된 것은 오랜 기간동안의 기획을 통해 이루어진 일이었다.

해외 직배사로서 국내가수들의 해외진출을 모색해 오던 소니뮤직 코리아에서는 가장 공략하기 용이한 시장이 일본이라고 판단, 지금까지 어설픈 일본 진출 시도로 기존의 가수들이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뭔가 한국에서 밖에 볼 수 없는 독특한 개성을 지닌 가수를 찾고 있던 차에 1995년 가을 일본의 조그만 인디 레이블에서 월드 뮤직의 한 장르로서 한국의 디스코 메들리 카셋트를 CD화해서 수입판으로 소개한 것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조금씩 화제가 되면서 여러 음악전문 잡지에 기사가 실리자 이전부터 관심을 갖고 지켜봐 온 이박사를 본격적으로 일본에 소개하고자 생각하고 전격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게 된 것이다.

(중략)

소니뮤직 코리아와 Ki/oon SONY 레코드는 수차례에 걸친 기획 회의를 통해 이박사가 한국의 뽕짝 디스코의 제 1인자로 널리 알려진 점과 일본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높은 점을 감안, 일본 젊은층들에게 사랑받는 최신 히트곡을 그의 독특한 뽕짝 스타일로 된 한국어 앨범을 제작, 앨범 발매 몇달 전부터 융단 폭격에 가까운 대대적인 홍보활동을 펼쳐 이미 이박사는 일본내 각종 공중파 방송및 유선 방송, 주요 인쇄매체에 커버나 톱기사로 여러 차례 실린바 있다.

지난 96년 2월, 국내 가요계에서는 전례가 없는 일이나 독도문제로 한일간의 감정이 상당히 껄끄러운 점을 고려하여 대단히 조용한 가운데 일본 미디어및 음반관계자, 일본 최고의 댄스 트리오인 <덴키 그루브>의 리드 싱어및 새 앨범 작업에 이박사를 게스트 싱어로 초대한 인기 퍼포먼스 그룹 <모던 초키초키스>의 리드 싱어 겸 프로듀서등 30명의 취재단이 내한, 독점 인터뷰를 비롯해 때마침 소니뮤직 관계자의 모친 칠순 잔치에 초대된 이박사의 공연장면을 생생히 담아갔다.

이박사는 96년 3월 21일에 일본에서 싱글 <이박사의 뽕짝 디스코 파트 1&2>, 4월 1일에는 앨범 <이박사의 뽕짝 대백과>에 이어 특히 젊은층에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역시 젊은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있는 "덴키 그루브"가 믹싱한 "이박사 덴키 그루브 : 열려라 뽕짝"을 발매했다.

현지에서는 아직 신인가수인데다 외국인이라는 핸디캡을 갖고 있어 처음에는 다소 소극적으로 앨범을 주문하던 주요 도시의 대형 레코드 매장들도 이박사가 예상외로 높은 인기를 얻자 앞다투어 매장 전면에 대형 간판을 장식하는 것을 비롯하여 일본의 톱가수들의 신보와 나란히 부스를 설치해 레코드를 판매했다. 특히 오오사카의 타워레코드나 HMV등의 대형 메장에서는 인스토아 이벤트를 마련, 현장에서 몇 십분만에 매장의 CD가 전부 팔려나가는 기염을 토했다.

(중략)

일본 현지에서의 활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일본 톱가수들도 꿈의 무대라고 서슴없이 말하는 무도관에서 데뷰공연을 가진 이박사는 1만여명의 일본팬들이 한국말로 "사랑해요, 이박사!"라고 외쳐대는 열띈 호응 가운데 성공리에 첫공연을 마쳤다. 지금도 일본에서 시청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후지 TV의 라는 프로에는 몇 년전에 다이애너 로스가 출연한 이후로 외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출연해 즉석 라이브와 인터뷰를 가졌으며, NHK-TV, 요미우리 TV, TV 아사히, 니혼테레비등 주요 공중파 방송및 SPACE SHOWER TV등 주요 음악 전문 케이블 TV등의 일본 프로모션 투어 밀착취재및 출연, 아사히 신문, 스포츠 니폰등 주요 일간지와의 독점 인터뷰, J-WAVE, TOKYO FM, NIHON FM등 각종 FM 라디오 출연및 인터뷰, <피아>, <스튜디오 보이스>, <팝틴>, <주간 문춘>, <포커스>, <시사통신>, <디지탈 보이>, <오리지널 컨피던스> 등의 주요 인쇄 매체에 연속 특집 기사로 개제되어 현지에서도 인지도는 길거리를 다니면 얼굴을 알아보고 팬들이 사인공세와 사진촬영을 요구할 정도의 인기를 얻었다.

(후략)

- 소니 뮤직 코리아 보도자료


실제로 당시 한국에 여행온 수많은 일본인들이 '왜 한국에서는 퐁차쿠를 많이 듣지 않는 건가요?'라고 질문할 정도로 이박사가 끼친 센세이션은 대단한 것이었지요. 그동안 한국 문화를 자국의 하위 개념으로 생각하던 일본인들이 독자적인 것으로 인정하기 시작한 계기는 사실상 이박사 때문이었습니다. 이전에도 일본에 진출한 한국 아티스트야 더러 있었지요. 홍백적에도 나온 조용필이라든가.. 다만 그전까지는 엔카 혹은 유사한 장르로 승부를 봤다면, 이박사는 전혀 생뚱한 장르로 일본에 전무후무한 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진출 당시 일본은 이박사의 '퐁차쿠'를 일렉트로니카의 독특한 하위장르로 보았습니다. 덴키 그루브나 메이와 덴키 등과 작업한 것도 그 때문이었지요. 90년대 덴키 그루브의 인기를 알고 있다면 당시 이박사가 얼마나 일본을 강타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96년 당시 FOCUS지의 특집기사


이박사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이박사 뽕짝 대백과' 앨범을 리뷰하면서 쓰겠습니다.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덧글

  • 漁夫 2012/02/10 22:39 # 답글

    이름만 알고 있었는데 일본에서 이미 히트 친 전력이 있군요.
  • Clockoon 2012/02/10 22:42 #

    대단한 분이지요. 덴키 그루브와의 앨범은 구하고 있는데 잘 안구해집니다. 꼭 들어보고 싶은데..
  • TEAM 2012/02/10 23:23 # 답글

    이박사님을 잊고 있었군요 ㅠㅠ 좋은 거 알고 갑니다
  • net진보 2012/02/11 00:14 # 답글

    실제로 이박사가 일본에서 인기얻고 우리나라에서 인기를 얻게되는 역수입 현상이있엇죠,,,,
  • 사슴 2012/02/11 00:35 # 답글

    일본에서 바퀴벌레약 CM도 찍으셨더군요.
    인기가 대단하긴 했나봐요~
  • 배둘레햄 2012/02/11 00:58 # 답글

    그러고보니 저 양반 나온지도 꽤 됐네요...ㅋ
  • Cheese_fry 2012/02/11 05:02 # 답글

    아아, 이박사하면서 들어왔더니, 역시. ^^ 덴키 그루브도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이름이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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