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프레젠테이션(데카메론) 많은 이야기

하는 일이 일이다 보니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레젠테이션에 대한 화제가 나오곤 하는데, 가끔씩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이 무엇일까를 논쟁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거의 대부분은 '스티브 잡스가 짱이다'로 귀결되곤 하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는 역사상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은 다름아닌 데카메론에 등장합니다. 만일 프레젠테이션이 청중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스토리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설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면, 이보다 더 완벽한 프레젠테이션은 없을 겁니다. 

(전략)
소녀는 하느님의 영감을 얻어서 하느님에 대한 봉사거리를 찾아나왔으며, 어떻게 하면 훌륭하게 봉사할 수 있는지 가르쳐 줄 분을 찾는다고 대답했습니다.
(중략)
그녀는 ... 다시 길을 더 나아가다가 한 젊은 은자가 살고 있는 오두막에 이르렀읍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루스티코라고 했으며 참으로 신앙심이 두터운 선량한 사람이었읍니다. 소녀는 그에게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에게 한 똑같은 질문을 했읍니다.
(중략)
금방 모든 유혹이 그의 신앙심을 시험하려고 도전해 왔읍니다. 오랫동안 자기의 신앙심을 과시해 왔던 그는 유혹을 맞이하여 물리치기는 커녕 순식간에 그 유혹에 지고 말았읍니다.
(중략)
그리하여 먼저 악마가 하느님의 가장 큰 적이라는 사실을 자세히 알려주고, 하느님에 대한 봉사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감사의 뜻을 더한층 나타내는 일이며, 옛날에 하느님이 지옥에 떨어뜨려 괴롭힌 악마를 다시 지옥에 몰아넣는 일이 된다고 설교했읍니다.
소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읍니다. 루스티코는 대답했읍니다.
"그것은 곧 알게 되지. 내가 하는 대로만 따르면 돼."
이렇게 말하고 몸에 걸쳤던 옷을 죄다 벗어 벌거숭이가 되었읍니다. 처녀도 그대로 따랐읍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를 할 때처럼 무릎을 꿇고 소녀를 자기 앞에 세웠읍니다.
(중략)
"루스티코님, 그 툭 티어나온 게 뭐에요, 저한테는 그런 것이 없는데?"
"오오, 소녀여 이것이 바로 내가 몇 번이나 말한 악마다. 알겠느냐? 이것이 이제 더 참을 수 없을 만큼 몹시 나를 괴롭히고 있느니라."
(중략)
" ... 분명히 말하지만, 하느님은 내 영혼을 구해주시기 위해서 그대를 이리로 보내신 줄 안다. 만일 악마가 나를 괴롭히더라도, 그대가 나를 가엾게 여기고 그 악마를 지옥으로 몰아넣어 주기만 한다면 그대는 내게 최대의 만족을 주게 되느니라. 게다가 그대는 하느님께 다시없는 기쁨을 드리며 봉사하게 되느니라. 또 그러한 이유로 그대는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온 것이니까."
깊은 신앙심을 품고 있던 소녀는 대답했읍니다.
"오오, 신부님, 제가 지옥을 갖고 있다면 필요하실 때 쓰도록 하세요."

보카치오, 데카메론 I, 권오혁 역, 하서, 1993. pp. 270-271

내용이 내용인지라 오프라인상에서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참고로 이 '프레젠테이션'은 너무나 완벽해서, 루스티코는 소녀를 감당하지 못하고 반강제로 쫓아내 버립니다.

덧글

  • Cheese_fry 2012/01/29 09:40 # 답글

    으하핫. 그런데 데카메론 얘기들은 은근히 윗 이야기 비슷하게 흘러가는 것들이 꽤 있었던 걸로 기억납니다.
  • Clockoon 2012/01/29 16:35 #

    그렇긴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은 중간과정을 스리슬쩍 넘겨버립니다 :)
  • 2012/01/29 20:0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lockoon 2012/01/29 21:35 #

    아, 오랫만입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저도 가끔씩 들러서 포스팅 읽어보곤 합니다. 쓰시는 내용에 대해 일천하여 흔적을 남기지 못하는 것이 죄송스럽군요.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Twitter

banners

foobar2000 audio 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