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초이목 논쟁 - 사이쵸와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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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주 유죄 판결에 대한 진중권과 소위 '나꼼수빠'들의 논쟁(이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관광)을 보다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포스팅.


1.
도쿠이찌는 오성각별을, '법화경'의 '약초유품'에 니오는 "한 차례 비가 땅을 적셔도, 세 가지 풀과 두 가지 나무의 크고 자라남이 같지 않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주장한다(같은 책).
(중략)
이에 대하여 사이쵸는 도쿠이찌가 인용한 부분을 "한 땅에서 태어나, 한 차례 비에 젖어도, 모든 초목에 그 자라남의 차별이 있는 것과 같다"고 정정한다.

'논쟁을 통해 본 일본사상', 아마이 쥰 외, pp. 32-33


원래 이 부분은 도쿠이찌와 사이초가 불성론/인성론에 대해 논쟁하면서 도쿠이찌는 오성설, 사이쵸는 일성설을 들이대는 내용이다. 여기에 대해 논하려면 불교 사상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을 할당해 논해야 하므로 생략하도록 하자. 이 글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다. 위 구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어딘가 논쟁의 초점이 이상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법화경이라는, 실체가 분명한 경전을 인용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말이 서로 다르다. 그것도 그 해석방식이 다르다, 이상하게 잘라서 인용했다 수준이 아니라, 아예 원문이 맞다 틀리다로 논쟁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둘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책에는 별다른 각주나 참고문헌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쓴 글을 직접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사이쵸가 쓴 '법화수구'의 해당 구절을 보자.

... 성(性)이 없고 정(情)만 있으면 불법을 이룰 수 없다. 얼빠진 사람 같으니(麁食者). 첫째 잘못은 법화경을 인용한 것에 있다. 도쿠이치가 약초유품(藥草喩品)을 인용해 말하니, ‘한 비로 적시어 주어도 세 풀과 두 나무가 자라나는 것이 같지 않다’(이미 이 문구는 잘못된 경문이다). 이것이 그 얼빠진 사람이 인용한 경문이다. 그 의미도 자기 멋대로 해석했을 뿐더러, 애초에 틀린 경문이다. 경문을 자의적으로 이용하면 안될 일이지.
... 無性有情不作佛。麁食者。第一死法華心腑文云。一者藥草喩品云。一雨所潤。三草二木。生長不同(已上似經文不正經文)。麁食者所引經文。似取意文。不正經文。謹案其經文。

法華秀句, '佛説已顯眞實勝一', 伝教大師 (필자 번역)


원문에서 볼 수 있듯이 사이쵸는 도쿠이찌의 말을 신랄하게, 그리고 확신에 찬 어조로 반박하고 있다. 물론 당시 사이쵸가 흥분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 정도로 당당하게 상대방의 주장을 받아치는 글은, 예를 들어 완당 김정희가 젊었을 적 고증학으로 좌충우돌하던 시절에나 찾아볼 수 있는 패기다. 적어도 저 글만 두고 봤을 때 사이쵸가 틀렸을 것 같지는 않아보인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렇다. 약초유품에서 도쿠이찌가 인용하려 했던 원래 구절은 다음과 같다.

비록 한 땅에서 자라나고 한 비로 적시어 주어도 여러 초목이 자라는 것은 각기 다르다.
雖 一地所生 一雨所潤 而諸草木 各有差別


이렇게 해서 도쿠이찌가 구절을 잘못 알고 이상한 주장을 한 것이다 - 라고 끝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

다시 '법화수구'를 자세히 읽어보자. 왜 사이쵸는 그냥 '틀린 말이다'라고 하지 않고 굳이 앞에 '자의적 해석(似取意文)'을 운운한 것일까? 사실 불교에 대해 관심을 조금이라도 가져본 사람이라면 도쿠이찌가 말한 구절에 그다지 위화감을 느낄 수가 없을 것이다. 세 풀과 두 나무(三草二木)라는 메타포는 법화경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비유이기 때문이다.

비가 내려올 때는 보살정신입니다. 비는 차별이 없는데 큰 나무는 많이 흡수하고 작은 나무는 적게 흡수하고. 제 양대로 흡수합니다. ‘삼초이목(三草二木)’이라고, 부처님의 법문은 일미법문(一味法門)인데 중생들한테 수용되는 것은 근기 따라 달라지는 것입니다.


인용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경전에선 동일한 풀과 나무에도 크고 작은 것이 있다고 가르친다. 초목의 종류가 다양하지만 예로부터 다섯 가지로 구분한다. 상초(上草), 중초(中草), 하초(下草)와 대수(大樹), 소수(小樹)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석도 입장에 따라 다양하다. 천태의 해석에 의하면 소초는 인천승이며, 중초는 성문과 연각승이며, 상초는 보살승이다. 소수는 통교의 보살이며, 대수는 별교의 보살이다. 삼론종의 길장은 약간 입장을 달리하고 있는데, 소초와 중초는 천태와 동일하게 해석하지만 상초를 보살승 중에서 지전(地前)의 40심(心)으로 해석한다. 소수는 초지보살이며, 대수는 칠지보살이라 본다.



참고로 약초유품에서 삼초이목을 다룬 전체 대목은 다음과 같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三草二木'이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 구절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迦葉。譬如三千大千世界。山川谿谷土地所生卉木叢林。及諸藥草種類若干名色各異。密雲彌布遍覆三千大千世界。一時等其澤普洽卉木叢林及諸藥草。小根小莖小枝小葉。中根中莖中枝中葉。大根大莖大枝大葉。諸樹大小。隨上中下各有所受。一雲所雨。稱其種性而得生長。華菓敷實。雖一地所生一雨所潤。而諸草木各有差別。


도쿠이찌는 당시 법상종의 대표격인 인물로서, 일본 불교계에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법화경을 왜 틀리게 인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으나, 사이쵸가 쓴 글의 문맥에서 미루어 볼 때(令他人起信。名爲經文。若有正經文。必示此後學。若無正經文。不足爲教證。麁食者。) 최소한 고의성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어쨌든 약초유품의 해당 부분은 결국 三草二木으로 귀결되며, 도쿠이찌도 이를 말하려 했을 것이다. 사이쵸가 파고드는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원문을 틀리게 인용했는데, 그 주장이 맞다 할지라도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이것으로 도쿠이찌와 사이쵸 간의 논쟁은 사이쵸의 승리로 끝나게 된다.

이 논쟁 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도쿠이찌가 속했던 법상종은 이후 급격히 쇠락하고 만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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